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문단 편집) == 실패한 올림픽 == 대회 도중인 7월 27일, 올림픽 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2명의 사망자[* 그 중 한 명은 튀르키예인 카메라기자였는데, 사고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해서 사망한 것은 아니고 취재 중 심장마비로 인해서 사망했다.]와 111명의 부상자까지 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게다가 당시 임시 행사 경비요원으로 근무했던 [[https://en.wikipedia.org/wiki/Richard_Jewell|리처드 주얼(Richard Jewell)]][* 본업은 피드몬트 대학교 경비원이었다.]은 사전에 폭발물을 발견해 시민들을 대피시킴으로써 인명 피해를 줄인 영웅이였지만 사흘 뒤에 언론에서 자작극이란 의혹이 제기되어 테러범으로 몰렸다. 1996년 10월에 혐의가 풀리고도 수개월동안 많은 사법당국 관계자들이 증거가 없었고 주얼이 관여되지 않았다는 정보가 있었는데도 리처드 주얼이 폭탄 테러에 관여했다고 개인적으로 주장해 왔다. 공식적으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혐의가 풀리기 전 FBI가 그의 집을 두 번이나 철저히 수색하고, 동료들을 심문하고, 주얼의 배경을 조사하고, 24시간 동안 감시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악명 높은 테러범 [[유나바머]]와 얼간이를 뜻하는 'doofus'를 합친 '유나더퍼스(Unadoofus)'라고 조롱했다. 이에 주얼의 변호사들이 거짓말 탐지기 관리를 위해 전직 FBI 요원을 고용한 후에야 압력이 완화되었고. 주얼은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 통과했다. 2003년이 되어서야 진범인 [[https://en.wikipedia.org/wiki/Eric_Rudolph|에릭 루돌프(Eric Rudolph)]]가 체포되었고, 그는 2005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주얼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NBC와 뉴욕 타임스 등을 상대로 승소했으나 애틀랜타 저널 발행처인 콕스 커뮤니케이션과의 소송은 사후 4년 뒤인 2011년에 "기사 게재 시점에서 테러범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졌으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라며 패소했다. 말년에 그는 경찰관이 되어 강연을 다니다가 2007년 8월 29일에 숨을 거두었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608290448722610|#]])[* 이후 그를 기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리처드 주얼>이 2019년에 개봉했다.] [[1980년]]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레이크플래시드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렀고]], 이어서 [[1984년]]에도 [[로스엔젤레스]]에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하계올림픽을 치른 점]]도 있어서, 12년밖에 안 된 이후에 또 한번 하계올림픽이 열리게 되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이 무리하게 올림픽을 과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후에 [[미국]]은 6년 후인 [[2002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솔트레이크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1904년 [[세인트루이스]], 1932년 [[로스엔젤레스]]에서도 하계올림픽이 열렸던 적이 있다.] 너무 상업적으로 대회가 흐르는 바람에 올림픽이 이래야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게 되었다. 모든 부분에 돈을 매기고, 자원 봉사자들마저 스폰서 로고를 달고 활동하는 모습이 좋게 비춰지지 않았던 것. 올림픽 경기장 주변 지역과 선수촌/기자촌 그리고 미디어센터 등 일명 '올림픽존'은 올림픽 스폰서 기업들의 폭리 장사판이었고, 결제마저 [[비자카드|스폰서 금융회사]]의 [[신용카드]]만 가능했다. 미디어센터 역시 너무 상업적으로 배치했고, 경기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미국 쪽 주관 방송사인 [[NBC(미국 방송)|NBC]]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갈등까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문제된 상업주의가 애틀랜타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러한 심각한 상태는 개막식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방송도 아닌 미국 쪽 주관 방송사 NBC는 개막식 도중에도 광고를 보여줬고, 심지어 이러한 광고를 위해 올림픽 개막식 중간중간마다 잠시 쉬는 타임까지 있을 정도였다. 30초만 광고를 보여줘도 이러한 개막식에선 길게 느껴지는데 자그마치 4분을 광고에 할애했다. 이런 느낌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것이 폐막식인데, 올림픽 폐회공연이라기보다는 유명 가수의 올림픽 폐회 기념 콘서트 같다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리아 에스테판]], [[리틀 리처드]], [[스티비 원더]] 등의 가수들과 [[비비 킹]], [[알 그린]] 등의 거장들이 총 출동했지만, 기획 자체가 미국 특유의 라스베가스식 쇼 느낌이 물씬 풍겼다는 평이다. 쿠베르탱 남작이 제창했던 아마추어 정신[* 사실 이는 [[올림피아 제전|고대 올림픽]]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은 완전히 사라졌고, [[다국적 기업]]들의 철저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다. 해당 문제는 6년 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이 [[9.11 테러]]와 관련하여 정략적으로 올림픽을 활용하면서 올림픽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되었다. 거기에 솔트레이크 올림픽 유치 당시 미국의 뇌물공여 스캔들이 폭로됐다. 애틀란타 올림픽의 물신주의와 솔트레이크 올림픽의 과도한 애국주의가 맞물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내부에서도 [[미국]]에 대한 반감이 강해졌고, 최대의 상업적 이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2012년]] [[뉴욕]]과 [[2016년]] [[시카고]] 시의 올림픽 유치 시도는 조기 탈락으로 끝났다. 결국 수십년이 지난 뒤에 [[2028년]]의 올림픽이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로스앤젤레스에서 다시 열리게 되었다.]] 대회 마지막까지 애틀랜타 올림픽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급기야 대회 폐막 연설에서 IOC 의장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는 관례적으로 하던 '역대 최고의 대회(The Best Olympics Ever)'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훌륭했던 대회(Well Done, Atlanta)라는 말만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역대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이다. [[파일:Atlanta_1996_logo.jpg]] 여담으로 대회도 막장이지만 [[마스코트]]인 이지(Izzy)[* 당초 나온 이름은 '와티짓'(Whatizit)이었지만 '''What is it?'''이냐라는 비판이 잇다르자 변경.] 역시 막장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화성인 마빈|상상의 외계생물체]]를 형상화했다는데 모양이 영 괴상해서 등신대 크기의 이 마스코트를 보고 아이들이 울어버려서 개막식 때 딱 한번 출연하고 폐막식 때는 아예 퇴출당했다. 심지어는 애틀랜타 시민과 그 인근 주민들도 "애틀랜타니까 뭔가 이 동네 특산물인 '웃는 [[땅콩]]' 같은 거 안 나오려나?" 했다가 저런 이상한 마스코트가 나오자 불평이 쏟아졌다고도 한다.--뭔가 [[산와머니|얘]]가 생각나기도 한다.-- 반면 애틀랜타의 상징인 [[불사조]][* [[남북전쟁]] 당시 완전히 잿더미가 된 애틀랜타가 빠르게 복구된것을 재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에 비유하기도 한다.]를 모델로 한 캐릭터인 패럴림픽 마스코트 [[:파일:Atlanta_Paralympics_mascot_Blaze.jpg|블레이즈]]는 아직까지 자동차 번호판에 달고 다니는 주민들도 있을 정도로 평이 좋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